보에티우스의 [철학의 위안 (De consolatione philosophia)] 에서.
아무리 많은 것을 가지고 있더라도 늘 부족하다 느끼고 더 많은 것을 갖기를 안달하는 자를 어찌 부자라 부를 수 있으랴.
네가 유배지라고 부르는 바로 이곳만 해도 이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고향이지 않느냐.
운명의 여신이 가져다주는 행복은 언제 또 빼앗아 갈지 모르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행복은 인간에게 최고의 행복이라고 말할 수 없다.
인간은 자신의 본성을 제대로 깨달을 때에만 다른 모든 피조물들보다 존귀하게 되기 때문에, 그렇지 못할 때에는 짐승만도 못한 천한 존재로 전락할 수 밖에 없다.
저 이전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믿음을 저버리지 않는 들녘으로 만족하며 사치와 게으름에 빠져 살지 않았고 배고플 때면 얼른 열매를 거두어 허기를 채우곤 했다.
쥐들의 무리 중에서 어느 한 쥐가 권력을 쥐고서 다른 쥐들에 대해 세도를 부리는 것을 보았다면, 네 눈에 그것이 얼마나 가소롭겠느냐.
운명은 불운의 모습일 때가 행운의 모습일 때보다 사람들에게 더 큰 유익이 된다는 것이다.
육신의 쾌락이 사람들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는 것이라면, 우리는 자신의 육신의 욕구들을 채우는 일에만 몰두하는 짐승들을 가장 행복한 존재라고 말해야 한다.
플라톤이 잘 말하였듯이, 사람이 배운다는 것은 망각했던 것을 떠올리는 것이리라.
나는 악인들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한다. 자신의 질서와 본성에 벗어나는 것은 존재하기를 그치는 것이다. 존재하는 것은 그 질서와 본성을 지킬 때에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악인들이 아무리 광분하여 날뛴다고 하여도, 지혜로운 자의 월계관은 그 머리에서 떨어지지도 않고 시들지도 않는다.
어떤 사람에게는 괴로움을 주어서 오랜 행운으로 인해 방종으로 치닫는 것을 막아 주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시련을 주어 고통을 당하게 함으로써 인내의 훈련을 통해 그들의 정신의 덕을 강화시켜 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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