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오래 전에 본 글을 다시 생각해 봄. 200903

ss_salix 2020. 9. 3. 20:42

오늘 하드 정리를 하다가 우연히 오래전에 메모해놓았던 글을 보았다. 

 

[ 만일 그러하지 않고

'나라면 저렇게 형편없이는 하지 않을텐데' 라며 만심을 갖는다면,
스스로의 장점조차도 제대로 모르고 있는 (  )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자신의 장점을 제대로 모른다면, 단점까지도 좋다고 여기게 된다. 
그런 마음가짐으로는 아무리 수련의 해가 쌓여도 실력이 향상되지 않는다.
이러한 것은 곧 하수의 근성이다. 

이십 사오세 (24, 25세). 

이 무렵은 (중략) 매우 중요한 전환기적 시점이다.
사람에 있어서 호조건이 이 시기에 결정된다.

이 시기의 꽃은 아직 초심자 수준의 단계에 어쩌다 피는 것인데도 
이미 이 길의 진수를 다 터득한 양 자만하여 정도에서 벗어난 제멋대로의 언동을 벌써부터 일삼고 

대성한 (   ) 인양하는 것은 참으로 개탄할 일이다.

... (중략)

 

그러한즉, 일시적인 꽃을 진정한 꽃인 줄 알고 그대로 믿는 마음이야말로 

진정한 꽃으로부터 더욱 멀어지는 마음가짐이 되는 것이다.

ㅡ. 호색, 도박, 과음, 이 세가지는 엄금할 것.

ㅡ. 수련은 철저히 하되, 자만심으로 인한 강퍅함은 경계해야 할 것임.

감추면 꽃이 되고, 감추지 않으면 꽃이 아니 될지니
이 경계를 아는 것이 바로 꽃이다.]

 

 

나의 굉장히 오래된 기억으로는 이 구절을 발췌한 책은, 아마도, 일본 가부키에 대한 책이었다. 

그것도 현대의 일본인이 아니라 좀 옛날의 가부키 전수자가 썼던 것으로 기억한다. 

여기서 말하는 '꽃'이란 능력의 개화, 가부키에 대한 재능 등등을 말하는 것일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 구절에서 '꽃'에 대한 의미가 애매모호해진다. 

 

감추면 꽃이 되고, 감추지 않으면 꽃이 되지 않는 것을 아는 그것이 꽃 이라는 구절. 

마치 불교나 도교의 금언과 같은 오묘함을 담고 있는 듯한 구절이지만 나는 이런 구절을 싫어한다. 

다만, 전반적으로 '꽃'을 앎에 대한 자만심과 교만함을 경계해야한다는 엄중한 메시지는 잘 전달된다.

 

가끔 교만함 또는 자만함에 대한 경각심에 대해서 생각해볼 때가 많은데, 

시기나 상황에 따라 이러한 유형의 감정은 많은 다양성을 나타내면서 입에 오르내린다. 

우월감, 교만함, 자만함, 자부심, 자신감, 당당함 등등.

결국 주변 사람의 기분에 따라서 좌우되는 판단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오랜만에 이런 메모를 다시 보고 드는 생각으로는, 

필자가 당시 주변 젊은 가부키 배우들을 보고 많이 언짢아했겠구나 정도이다.

아마 옛날에는 많은 느낌이 있었던 것 같지만 지금은 별다른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러기보다는, 인간은 왜 사는가 에 대한 생각이 든다. '꽃'을 피우기 위해서인가?

누구를 위해서? 자신을 위해서?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