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인간은 centenarians까지 되어버린걸까.
이러한 긴 수명은 과연 생명체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인간에게 주어진 긴 생명은 진화적 시각으로 겉을 핥아 볼때, 어느 시점까지 유전자의 섞임이 일어난 후에 그 유전자의 섞임을 다시 늦추고 있는 것 같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이며 어떤 결과로 끝이 날 것인가.
왜 길어진 것일까. 의료의 발달이라고 말하지만 애초부터 인간종의 수명은, 몇 십년이라는 이 수명은, 충분히 길었다.
유전자를 자손이라는 산물로서 남기는 것은 100 년 이상이나 사는 삶은 적어도 현대에서는 전혀 필요가 없으며 또한 인간은 청소년기 이후에 항시 생식가능 상태이므로 언제든 유전자의 다양성 추구는 가능케 할 수 있다.
자손이 성체가 될 때까지의 시간이 오래 걸리며 다양한 환경에서의 적응기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수명의 longevity는 생각해볼 수 있으나 그럼에도 100 년이라는 시간은 그 이유의 당위성을 쉽사리 찾을 수 없다.
고대의 상어나 현대도 있는 거북과 같은 개체, 또는 심해의 어느 갑각류 등 100 년이라는 시간 넘게 그 생리적 기능을 유지하는 동물들도 있다. 대부분 아이러니하게도 바다와 관련이 있다.
심해의 괴생명체들은 왜 몇 십년, 몇 백년이라는 시간을 존재할 수 있도록 되어있는 것일까.
반대로, 이들은 왜 죽어버리게 되어지는 것일까.
가끔 박테리아나 배양되는 세포들을 볼 때 이들은 환경이 변하지 않는한 무한한 생명을 가지고 있는 메커니즘 위에서 돌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세포나 세균 하나하나는 사멸하지만 그 dish 위에서 같은 질료로 생성과 사멸을 계속 하고 있음을 느낀다 (물론 실제적으로는 아무리 무한한 배양 재료들이 갖추어져 있더라도 genetic한 배양한계점이 존재한다).
넓은 시야에서 인간군상 또한 무한한 생명의 순환 속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시간의 정보저장과 의식의 개체성에 의해서 무형적 데이터는 하나하나 유한하며 고유하며 또 사라진다.
중요한 점은 인간은 지구 환경의 일부분으로 속해왔는데, 이러한 점에서 생각해볼 때, 지구내 다양한 수명의 range 속에서 왜 긴 수명을 보장받게 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심해의 알 수 없는 메커니즘도 아닌 육상의 원숭이가 왜 긴 수명을 가지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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